2008년 06월 20일
강철중 1-1, 우리들의 안 일그러진 영웅
대통령 한분 잘못 뽑은 탓에 지난 100일간 목구멍부터 명치까지 뭔가 꾹 막혀 내려가지 않는다면, 이 영화 '강철중'을 보시라 권하고 싶다. 현실의 고단함을 스크린에서 풀어야 한다는 게 한편으로는 서글프지만. 15년을 죽어라 일하고도 은행에서는 대출자격 미달이라는 소리나 듣는, 강부자, 고소영과는 거리가 먼, 한 서민형 열혈 형사가 우리 사회 가장 여린 속살까지 파고든 사회악을 통렬히 징벌하는 것이 가슴 후련하다.
<우리들의 안 일그러진 영웅, 강철중>
도입부부터 영화는 심상치 않은 문제제기로 말문을 연다. 경찰은 '깡패들 싸움 다 끝나면 나타나는 사람들' 이라며 경찰보다는 깡패가 좋다는, 꿈나무 초등학생들에게 일일교사 강철중 형사는 분통을 터뜨린다. 그리고 '경찰이 좋으냐 깡패가 좋으냐'는 이 초딩식 물음은 영화 전반에 걸쳐 집요하게 관객을 따라다닌다.
깡패여도 남들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산다고 큰소리치는 깡패의 마나님, 강남 목 좋은 곳에 노래방 몇 군데 차려 월수 3,000을 자랑하며 벤츠 굴려 주시고 1인분 55,000원 하는 한우 자시는 퇴역 깡패 vs. 남들에 비해 '뒤로 삥도 뜯고 해쳐먹기도 했다'는데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집에 전세금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경찰. 초딩식 머리굴림이 아니더라도 이쯤되면 게임오버 아닌가. 그러나 그런 시니컬한 풍자로 돈내고 보는 사람 계속 씁쓸하게 만든다면 더이상의 속편은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영화는 꼴통 형사 강철중의 통쾌한 활극을 준비한다.
급소를 아슬아슬 빗겨간 중상을 입고도 다음날 거뜬히 생라이브 무한배틀을 치러내는 우리의 수퍼 히어로 강철중! 그에 비하면 준비물 갖추고 변신을 해야하는 등의 번잡스런 서양의 각종 맨들은 애들 장난같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거침없이 쏟아붓는 걸쭉한 입담은, 입으로는 '생각대로 하면 되고'를 불러제끼면서도 실제로는 시키는대로 하고 사는 소시민에게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리고 마침내 힘 있고 빽 있고 돈 있고 심지어 무기까지 있는 놈들을 상대로 맨몸으로 들이밀어 피튀기는 승리를 쟁취하니, 높은 산에 올라 일출을 바라보며 삼세번 야호를 외쳐댄들 이보다 더 시원할까.
가질 것 다 가진 자들의 죄를 법에 의해 처벌하는 아름다운 풍속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서, 수퍼 악당에 대항하는 그의 방식은 가장 비현실적이면서 또 가장 현실적이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현실의 물리력으로라도 정의를 바로 세웠으면 하는 바램, 그 바램들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원기옥, '강철중.' 누군가가 애타게 불러대는 '의병'이란 바로 이 사람?
<Small size of 어른, 아이>
나이가 들어서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한편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인정받는 깡패가, 조폭의 일원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청소년들, 대체 너희를 어.찌.하.면.좋.단.말.이.냐? 아마도 영화는 아이들의 철없는 호승심을 이용해 자기 뱃속을 불리는 거대 조폭의 더러운 면면을 보여주고 싶어한 것 같다. 허나 왠일인지 내게는 지켜줘야 할 희생자로서의 아이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가해자로 우뚝서는 무서운 아이들의 모습이 더 크게 보였다.
주먹을 쓰는 깡패는 이미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로망이다. 마찬가지로 '집안이 불우해서, 획일화된 학교교육의 희생양으로, 미화된 이미지에 현혹되어, 순간의 혈기에 삐끗해서' 아이들이 깡패의 길로 접어든다는 생각 또한 작금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의 아이들은 차라리 '너무 아는 것이 많아서, 너무 욕심이 많아서, 너무 영악해서' 깡패가 된다는 게 더 그럴듯해 보인다.
심심찮게 사회를 뒤흔드는 초등학생, 청소년들의 범죄를 봐도 그렇다. 오래 전부터 조금씩 아이들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들은 몸집만 작았지 다른 건 다 어른인, 빗나간 어른들의 전유물이던 '쉽게 성공하려는 욕심, 법보다 가까운 주먹, 남을 괴롭혀 얻는 그릇된 쾌감' 등을 고스란히 상속받은 'small size of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사회는 아이들을 그 옛날의 아이들로만 보고 싶어한다.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럼으로써 아이들의 순수성은 지키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어른들에게는 양심의 가책을 통한 일말의 구원의 여지라도 남겨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택도 없는 석기시대의 性과 도덕을 가르치고는 할 것 다 한 양 희희낙락거린다. 참 비겁하다.
'요즘 애들은 한 성깔 하거든요?' '그래, 그런 애가 커서 내가 됐다, 새끼야' 일진짱과 강철중님의 감칠맛 나는 대화다.
<재밌는 영화>
강철중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었다. '장진 각본'에서부터 진즉에 알아봤다. 행여 과하게 코믹하지 않을까 살짝 우려도 했는데, 전작의 분위기를 깨지 않는 선에서 멋지게 절제했다. 짝짝짝!
배우들의 연기도 참 훌륭했다. 역시 강철중은 말쑥한 검사보다는 꼴통 형사가 제격이고, 야비하면서도 정의롭고 의뭉스러우면서도 단순한 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설경구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싶다. 정재영은 참으로 좋아하는 배우인데, 비슷한 캐릭터(주로 우직하고 몸 많이 쓰는)를 많이 맡아서인지, 말투며 표정이며 이미지가 다소 고정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좋은 배우이니 새로운 모습으로 곧 변신하겠지.
멀미 나게 어지러운 요즘, 모처럼 통쾌하게 웃을 수 있는 좋은 영화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 by | 2008/06/20 22:52 | 일상다반사 | 트랙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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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강철중 : 공공의 적 1-1 (2008)
2008.06.19 개봉 | 15세 이상 | 125분 | 드라마,액션 | 한국 | 국내 | 씨네서울《공공의 적》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설경구와 동치 될만할 캐릭터 강철중의 걸진 대사들과 예의 우격다짐, 혈혈단신으로 끝까지 밀어붙이고야 마는 한바탕 투견판 같은 액션, (비록 강우석 감독만의 신파라 칭할지라도) 사회 현실 밑바닥부터 건져 올린, 대리만족의 궤도를 따라가게 하는 영화 전반의 투철한 도덕 명제......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