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19일
추기경님은 구두 밑창만 본 사람들을 더 사랑하실 겁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에 많이 울적하다. 카톨릭 신자도 아니고 성당이라고는 친구 결혼식에 딱 한 번 가 본 게 전부인데, 가까운 사람이라도 잃은 것처럼, 시시각각 들려오는 그 분 소식에 눈물도 나고 뭉클하기도 하고. 아, 이런 기분 얼마 전 한 번 느낀 적 있다. 숭례문이 소실되었을 때였지. 수없이 지나치면서도 제대로 눈길 한 번 준 적 없는데, 500년을 지새운 국보 1호가 하룻 밤 사이 허무하게 무너진 걸 보니 절로 눈물이 나며 가슴이 막혀왔었다. 지금도 딱 그렇다.
오늘 오후 5시 입관이라는 뉴스에 어젯밤부터 꼭 조문을 가야겠다 생각했고, 명동으로 향했다. 익히 듣던대로 줄이 정말 끝도 없었다. 여기가 일본도 아니고 지독히도 줄 서기 싫어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인데...명동 한복판을 휘감으며 상행선 하행선 둘로 나누어 늘어선 줄을 보며 한편으로는 놀랍고 또 가슴 한켠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마음은 간절해도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릴 형편이 아니었기에 바로 명동성당으로 올라갔다. 대성전에 들어가 뵙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근처에서라도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명동성당 초입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다 내려왔다. 오는 길에도 어른 아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줄은 여전히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저녁 때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니 추기경의 조문 기사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 중 하나를 클릭하니, 일반인들은 줄 서서 몇 시간씩 기다려 겨우 3초, 그것도 추기경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 구두 밑창만 보고 나온다고. 그래,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그랬을 거야. 또 그와 대비되어 유리관 가까이서 추기경을 뵐 수 있었던 부럽기만한 특혜받은 사람들의 사진들도 속속 올라오고. 오늘은 연예인도 보이네. 괜히 기분이 꽁기꽁기 해지는 것 같아 페이지를 넘기려는 순간,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추기경님은 구두밑창만 보고 간 사람들을 더 사랑하실 겁니다.
문득 명동성당에 걸려있던 대형 현수막이 떠올랐다. 추기경의 사목이라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성당 가는 길에 스쳤던 사람들도 떠올랐다. 할머니, 아저씨, 젊은 연인들. 아무 사심없이 아무 불평없이 추기경을 만나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기다리던 사람들. 맞아, 추기경이시라면 분명 몇 시간을 돌고 돌아 당신을 만나러 온 그 이웃들을 더 따뜻하게, 환하게 맞아주실거야. 분명 그럴 거야. 그런 확신이 들자 마음이 넓어진다. 그래, 누가 가까이서 뵈었나, 누가 덜 기다렸나, 이건 이제 생각하지 말자.
# by | 2009/02/19 23:34 | 일상다반사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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