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 4시간의 기다림과 깨달음

2시 무렵 대한문 앞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병풍처럼 분향소를 에워싸고 있는 경찰버스와 도로를 가로막은 전경들이었다. 마치 분향소 전체를 옥죄어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듯한 버스의 횡포(이건 신종 명박산성?)에 여기저기서 원성이 터져 나왔고, 겨우 겨우 그 좁은 틈을 빠져나오니, 비로소 천막 하나 치지 못한 채 풍천노숙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이 보였다. 해도해도 참으로 너무한 광경이다.
              
조문객 행렬의 끝을 쫓아 지하철 시청역 역사 안으로 들어간 게 2시 10분.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은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줄의 규모로 보아 서너시간은 족히 걸리겠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니, 책이나 MP3, 소일거리 하나 가져오지 않은 게 몹시 후회스러웠다. 볼 거라고는 앞 사람 등 밖에 없는 답답한 지하철역 안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은 간간히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의지한 채 그렇게 몇 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생리현상도 급해지고... 무작정 기다리면서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중간에 털고 일어서지도 않았다. 원망이 있었다면 입으로는 애도와 유감을 말하면서 정작 행동으로는 어떻게 하면 조문객들을 조금이라도 더 불편하게 해서 한명이라도 덜 오게 하나에 혈안이 된 듯한 쥐마왕 정부의 작태에 대한 것일 뿐. 봉하마을에서 일부 인사들의 조문을 막은 것에 대해 '원수도 조문은 하게 하는 법인데'를 운운하는 사람들은 꼭 대한문 앞으로 나가보기 바란다. 자기들의 대통령이었던 분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국민들을 이 정권이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먼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나서 그런 말을 해도 해야 할 것 아닌가.  

가만히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가방을 매고 온 학생, 초로의 어르신,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들과 함께 온 엄마 아빠가 있고,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온 좀 더 젊은 부부, 한낮의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복을 갖춰입고 온 직장인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을 두고 한 일주일쯤 뒤면 정부와 조중동이 입을 모아 뭐라 부르기 시작할지 생각하니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그래 나는 지금 바로 좌파 불온세력과 함께 있는 것이다.  
         
드디어 지상으로 나온 게 4시 20분. 하늘과 나무, 햇살과 바람이 있으니 기다림이 한결 나았다. 어전히 경찰버스와 전경들이 벽을 쌓고 있었지만 그래도 두 시간여 만에 진짜 공기가 폐에 들어온다는 것이 어딘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검정색과 노란색 리본이 주렁주렁 매달린 긴 줄이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게 늘어져 있었다. 리본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적어 놓은 대통령께 보내는 짤막한 인사가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여기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런 마음일진대, 이렇게 정 많고 분별력 있는 좋은 사람들이, 왜 결정적인 순간에는 잘못된 선택을 해서 모두 함께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조문행렬 내내, 언론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적대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노 대통령을 그 험란한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게 한 게 검찰을 내세운 쥐마왕 정권이라면, 거기서 뛰어내리게 한 건 바로 조중동이 다스리는 이 나라의 언론이니까. 뭐라고 또 왜곡보도를 하려고 그러는지, 누구를 또 폭도로 몰아가려는지, 마이크며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버스 위에서 몹시도 바지런히 움직여 댔지만 그들은 결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렇다고 안타까울 것도 없다. 그들이 치뤄야 할 죄값과 피값을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결코, 영원히 치르지 않을 것이니까.    

아련히 퍼져오는 향 내음에 고지가 멀지 않음을 느꼈다. 드디어 대한문 앞에 다다른 건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장장 4시간여만에 다시 보는 분향소는 그새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나마 몇 군데 천막도 생겼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분향할 수 있도록 더 넓게 마련되어 있었다. 줄을 재정비하고 봉사자들이 나눠주는 리본과 국화를 받고나니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서 두 번 절하고 나면 빛이 들어오고 바람이 통하던 문은 꽁꽁 닫히고, 다시 숨막히는 갑갑함 속에 갇혀 버리는 것인가. 하루종일 기다렸던 일인데, 한 줄 한 줄 밀려 앞으로 나가면서, 오늘 처음으로 시간이 더디 가기를 빌었다. 
 
영정 속의 대통령은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있다. 저런 웃음은 꾸민다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런데 왜? 어른들이 그토록 좋다고 칭찬해 마지 않던 이마의 주름들도 이 어른의 불운을 막아줄 만큼은 아니었던 걸까? 강한 자가 이기는 것도 아니고 이기는 자가 강한 것도 아니고, 현실은 그냥 비열한 자가 이기는 것이다. 

대통령 앞에 서면 하려고 준비해 간 말이 있는데, 못했다. 아니, 내가 절을 하기는 했는지, 국화를 드리기는 했는지, 신발은 어떻게 주워신은 건지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다. 세상에...나... 오늘 하루 종일 뭐 한거니...

오늘 4시간 10분의 조문길에서 생생히 느낀 건, 살아서도 지극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쥐마왕의 두려움과 열등감이 돌아가신 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아니, 이제는 쫓아갈 길마저 영영 없어졌으니 더 심해졌다고 할까.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는 얘기가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아마 지금쯤 모여서 기우제라도 지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이번에는 어디에 또 산성을 쌓을지 궁리하고 있으려나.    
        

by amapola | 2009/05/24 21:00 | 일상다반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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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5/2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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