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3일
뻥튀기 할아버지의 죽음
동네 어귀에 좌판을 깔고 뻥튀기를 파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얼마나 오래 됐는지 정확히 따질 수도 없지만, 여하튼 참 오랜 세월이었다. 가끔은 할머니가 와서 같이 파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교대로 계시기도 하고. 대학가라 밤 늦게까지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서인지, 아주 늦은 밤까지 계시곤 했다. 퇴근하고 자정 무렵 집에 들어올 때도 어김없이 계셨고, 그러면 한 봉지씩 사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뭐 특별히 안면 트고 친근하게 지낸 것도 아니고, 그냥 항상 거기 계시는 좀 안쓰러운 할아버지였고, 기회 닿으면 뻥튀기 한 봉지씩 사 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그런 할아버지였다.
최근 몇 년은 할아버지를 별로 뵙지 못했다. 차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지하철을 타더라도 마을버스가 생겨 다른 길로 오게 되니 아무래도 예전같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그 길을 지나다 할머니를 보게 됐고, 오랫만에 뻥튀기나 좀 사볼까 싶어 다가갔다. 여전히 한 봉지에 500원 하는 뻥튀기 두 봉지를 집어들고, 할머니가 거스름돈을 세고 계시는 동안 무심히 여쭤봤다. "오늘은 할아버지는 안 계시네요?" 그러자 대뜸 돌아가셨단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황망히 서 있는 나에게 일사천리로 자초지종을 말씀하신다. 작년 12월 26일 새벽 한 시 반쯤, 그 날도 여전히 뻥튀기를 파시다 기계가 과열되어 화재가 났단다. 크게 화상을 입고 수술을 받게 됐는데, 수술비가 천 오백만원이 되는데 그게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번 해야 되는 상황이라 결국 자식들이 포기하고 퇴원을 시켰고, 그리고 며칠 후 돌아가셨단다. 그리고는 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지난 사연을 말씀하시는데, 할아버지가 젊어 시골에서 돈을 많이 버셨는데 어쩌다 농협빚을 내어 농사를 확장하다 결국은 그게 다 농협으로 넘어가 버렸다는 것, 아들이 크게 성공했다는 얘기, 말씀이 빨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였다. 왠지 거스름돈 받기가 미안해서 그냥 도망치듯 집에 오며 할아버지 얼굴이 어땠던가 생각해보려 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 와서도 괜히 싱숭생숭하다. 잘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요, 얼굴도 생각나지 않고, 기억이라고는 뻥튀기 사고 판 것 밖에 없는 생판 남인데, 오래 되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그게 누가 되었건, '죽음'이라는 게 이제는 흘려 넘길 수 없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 걸까.
지인들의 죽음 앞에 느끼는 후회는 당연하다. 하지만 알고 지냈다고 하기도 힘든 할아버지의 죽음에도 후회가 인다는 사실은 좀 낯설다. 그 오랜 세월 오며 가며 본 인연인데, 왜 한번도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을까 하는, 궁색하기 그지 없는 후회. 할아버지 손톱에 때가 까맣게 껴 있는 걸 보고 나서는 다시 뻥튀기 사 먹기가 좀 껄쩍지근 해졌다는 사촌동생의 얘기에 나도 좀 꺼려했던 것에 대한 후회.
자잘한 후회들이 쌓이자 느껴지는 엄청난 불안. 주위 사람들에게 후회없이 좀 잘 해야 하는데 나는 정말 어쩌자고 이러는 걸까. 앞으로 내가 느끼게 될 후회의 무게를 상상하니, 당장이라도 질식할 지경이다. 부모님께, 형제들에게,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들에게, 하루하루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잘 하며 살아야 하는데...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는 존 던의 싯귀가 오늘처럼 크게 느껴진 적이 없는, 심란한 밤이다.
# by | 2009/07/23 22:44 | 일상다반사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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