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분향소 다녀온 날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에 다녀온 게 엊그제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한 해에 두 번씩이나 국상을 당할 수 있는지 참담한 마음으로 여의도로 향했다. 시청 광장의 분향소가 가깝고 편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운구가 모셔진 곳으로 가고 싶어 먼 길을 택했다. 어차피 앞으로는 국상이라 해도 조문갈 일이 없을 테니.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는데 햇살을 가려 줄 천막은 한창 작업중인지라 반은 땡볕에서 반은 천막에서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참 많았는데 조금 걱정도 됐다. 장소가 널찍하다 보니 노대통령 때처럼 공기 탁한 지하철역 안에서 몇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일은 없었다. 그 때 생각을 하니 또 화가 치민다. ㅅㅂㄻ 들.  

역시나 영정 속의 대통령은 인자하게 웃고 계신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조차 참 소탈하고 서민적인 느낌이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전설처럼 들려오는 엄청난 학식과 명석함으로 경외감을 자아내는 분이셨다. 내가 생각하는 완성형 사상가들의 초상과 비교할 때 낯설만큼 편안한 웃음이었다. 절을 올리고 싶었는데 묵념만 허락됐다. 시간과 여건이 여의치 않아 그리 했겠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왠지 내가 해야 할 예를 다 못 한 것 같은 찝찝함에 마저 합장을 하고 짧게 빌었다. 이제 다 내려놓고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평생을 사신 당신은 정말 큰 사람이셨습니다.    

한국에서 IMF가 터졌을 때 나는 유학 중이었고 국가의 위상이 실추된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 학생들을 돕기 위한 긴급 XX 등등이 여기 저기 생겼고, 교수들의 격려에 되려 힘이 빠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걱정해 주는 일본 친구들 보기 참 민망스럽고... 김대통령의 노벨상을 수상에는 한 마디로 으쓱~으쓱~이었다. 뭐 노벨상 수상이 대대적으로 광고되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어쨓든 알만한 교수나 친구들은 모두 한 마디씩 축하의 말을 잊지 않았다. 한국 학생들이 모이면 내가 상 받은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축하야 하는 모처럼의 기분좋은 하소연이 오갔고.
나중에 한국에 들어와 노벨상에 대해 음해하는 말을 듣고 정말 까무러칠 뻔 했다. 특정 지역에서 반대 청원이 빗발쳤다는 말에, IMF때 만리 타향에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느꼈던 자괴감보다 수백배는 더한 자괴감을 느꼈다. 왜 대한민국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것일까?

한국판 정관의 치를 펼쳤던 두 대통령의 서거에 우리나라 국운의 반이 떨어져 나간 기분이다. 두 분이 평생을 바쳐 지키고 염원해 온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이 빛의 속도로 멀어져 가는 걸 이렇게 멀거니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돌아가시면서까지 우리를 위해 마련해 준 마지막 선물은 고마움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로 인해 내 팽개쳐지게 생겼고. 도무지 땅 파고 국민들 잡아들이는 것 말고는 참으로 소심하기 짝이 없구나, 주어가 없는 그 누구는. 말로는 최고의 예우네 국장을 운운하지만, 결국 뒷통수 후려갈기는 건 여전하네. 지난번에는 버스 둘러치기와 플라스틱 만장으로 큰 웃음을 주더니 이번에는 노제도 없는 기괴한 6일장에, 초청장에 친서논쟁에...

日暮途遠... 무엇이 그리 급하고 무서워서 순리를 역행하려 하는가?

by amapola | 2009/08/21 21:30 | 일상다반사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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