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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고전 읽기의 중요성 by amapola


2012년 책읽기의 목표는 '고전 많이 읽기'였다.
읽은 지 하도 오래 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들, 문고판으로 압축해서 읽은 것들, 여기저기 내용을 주워들어서 도대체 읽은 건지 안 읽은 건지 헷갈리는 것들, 이런 고전들을 처음부터 쭉~ 다시 읽어볼 생각이었다.
고전을 '시간의 세례를 받아 비교적 실패할 확률이 적은 안전한 책' 정도로만 여겼을 뿐, 고전이란 이름으로 당연시되는 절대적인 아우라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 나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그래도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의 90%는 '어찌됐건 남들이 다 손꼽는 책인데 한번 읽어 봐야 되는 것 아닐까'였으니, 아무리 반항하려 해도 고전이 주는 이름값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이 큰 결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참 맹~맹했다. 심지어 내가 큰 불평 없이 읽었다고 기억되는 책들마저도 다시 읽으려니 너무 심심했다. 전원교향악이 이렇게 답답한 책이었던가? 보봐리 부인이 이렇게 안 넘어가는 책이었던가?

내가 주로 고전을 읽었던 시기는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10대에서 20대 초반이었다. 학교에서 시켜서 읽기도 했고, 더 나은 성적을 위해 욕심내어 읽기도 했고, 책읽기를 좋아하다보니 찾아 읽기도 했다. 그때는 그렇게 술술 읽었던 책들인데, 지금에 와서는 여간 읽기 힘든 게 아니다. 갑자기 난독증이라도 생긴 걸까 싶을 만큼.
이건 비단 문체가 구식이라든가 내용이 길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내 감성이 너무나 달라져 있다는 게 문제다. TV만 켜면 드라마든 영화든 키스신이 대수롭지 않은 지금, 손 한 번 잡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고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걸 어찌 지루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날 갑자기 총천연색 칼라 TV가 하루 종일 흑백 방송만 하고 있다면, 나는 과연 전원을 끄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감성만이 아니라 지식도 문제다.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는 지금 읽어도 무척 재밌기는 했지만,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내가 아무리 문과 출신이라지만 이런 허접한 대포알로는 달은커녕 지구 대기권조차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정도는 당연히 안다. 그 당시로서는 정말 센세이셔널했음에 틀림없는 두말할 나위 없이 존경스런 상상력이지만, 어쩔 수 없는 21세기 성인의 눈에는 턱없이 부족한 과학상식에 식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내가 중학생 시절 읽었다면 어땠을까? 대포알 속에 집을 짓고 들어가 달에 간다는 생각에 통쾌해하며 좋아하지 않았을까?     

내 10대는 인터넷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온라인 게임도 없고, 눈과 뇌를 마비시키는 자극적인 영화도 없는 그런 시기였다. 물론 그 당시도 엄연히 성적의 압박이 있었고, 입시 경쟁이 있었고, 질풍노도의 고민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눈 돌아가게 빠르게 바뀌는 세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긴 호흡의 책들은 긴 호흡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책이든 보고서든 드라마든 빨리 빨리 진행이 되고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온갖 화려한 임팩트와 반전의 반전이 없는 영화는 시간 들여 보기가 싫다. 이렇게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조급한 어른이 되어 버린 내가 고전을 읽을 엄두를 냈다니, 참 나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랐나 보다. 

고전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쓰고 있다 해서 다 훌륭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고전 중에는 지금 읽어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책이 많음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이 현상은 참 슬프기까지 하다.
이즈음 고전 읽기에 도전하며 절실히 깨달은 건, 고전은 가능한 한 어렸을 때, 현대의 감성과 지식에 조금이라도 덜 노출됐을 때 읽는 것이 좋겠다라는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어찌 내 그 시절을 대입할 수 있을까마는, 느릿느릿한 책을 그나마 용납할 수 있는 건 그래도 인생에 있어서 그 짧은 시절 뿐이라는 걸 아마 그 아이들은 모르겠지?
 
고전을 읽으려는 21세기 한 어른의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깨알같은 글씨가 촘촘히 박힌 이 두꺼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앞에 절로 겁이 나지만, 지금이 아니면 내년은 더 힘들 거고 내후년은 더더 힘들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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